시적 발상을 모티프(Motif)로 착상시킨 주지시(主知詩)

 

양승연 시인
양승연 시인

문예마을 32호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한 양승연 시인을 만났다. 그는 응모작 5편 중『첫사랑』,『세월의 무게』,『평화의 노래』,『사랑의 둥지』등 4편이 문학성을 높이 평가받으며 등단했다.

양승연 시인 수상 소감

문예마을 신인 문학상 공모전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떨려 한참 동안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나의 문학적 감수성은 유년시절 아버지의 지게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버지 지게는 늘 저를 설레게 하고 기쁨을 주던 요술램프였습니다. 여름이면 소먹이 꼴(풀) 속에 머루며 다래 그리고 신 맛 나는 시겡이를 숨겨와 막내딸 앞에 자랑스럽게 풀어놓으셨고 겨울이면 땔감 나뭇단에 섞여 온 진달래 가지를 빈 술병에 꽂아 안방 책상에 올려놓고 꽃 몽우리가 조금씩 부풀어가는 것을 함께 보아주던 분이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 가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일기처럼 쓰다가 서점을 방문하면서 ‘어느 구석진 자리라도 괜찮으니 내 이름 적힌 시집이 판매대에 진열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동안 접어두었던 꿈을 이번 등단을 계기로 한 발 더 다가간 것 같아 다시 마음이 설레입니다.

저의 당선을 함께 기뻐해 주신 가족과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시인이라는 명함을 만들어준 문예마을에도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첫사랑 

              양승연

어느 세상에서 날아왔나요
마음속 향기로 물들이던
작은 꽃잎 하나 피어나던 날

그대를 향한 낸 눈엔
핑크빛 무지개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얼굴은 붉어지고
들숨과 날숨을 몰아쉬던 여린 가슴에
원앙 꽃 한 송이 피어납니다

하늘이 허락한 거룩한 인연의 선물
태산이 되어
삼십여 년을 사랑만 노래 부릅니다
 

사랑의 둥지

            양승연

오손도손 정겹게 들려오는 목소리
부엌 한편에 지지고 볶는
요란한 맛의 소리가 들려온다

얘야
네 아버지 식사하시라고 하렴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한걸음에 달려간다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 지금
쓰러져 내려앉은 허름한 집

외양간 기둥 사이로 드러난
앙상한 안채
사람의 인적은 어느 날 멈추었다

십여 평 남짓한 안마당
잡초는 무성해도
조각난 차양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주인 잃은 서러움에 흐르는 눈물
툇마루 끝에 놓인 하얀 고무신만
추억을 간직한 채 홀로 늙어갑니다

 

심사평

송귀영 (시, 시조, 수필, 평론 한국 시조 협회 고문)

시적(詩的) 순수함은 애틋한 존재의 묵시적인 고독이 촘촘히 묻어나는 감미로움을 곁들어야 한다. 시인들은 자신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기보다 은둔에 가까운 형식을 취하되, 솔직성보다는 그림자로 묻어두는 의인화법이나 비유법을 쓰는 것이 효과적일 때도 있다. 문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는 안내 역할을 한다. 진귀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삶에 지친 영혼들에 꿈과 이상의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훌륭한 길잡이임을 명심할 일이다.

양승연의 투고 작품 5편 중『첫사랑』,『세월의 무게』,『평화의 노래』,『사랑의 둥지』등 4편을 신인 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높이 뽑아 들었다.

당선작『첫사랑』은 잔잔한 서정시로 시상을 조율하는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본 첫사랑의 정감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첫사랑』에서 향기로 물들이던/ 핑크색 무지개/ 몰아쉬던 여린 가슴/ 인연의 선물/ 등의 시어를 채택하여 시적 이미지를 추상과 구상으로 변용시켜 형상화함으로써 신인다운 참신성을 보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세월의 무게』에서 시적 핵심과 동기유발 피사체는 학교에도 가보지도 못한 팔십이 넘은 노모에 새겨진 세월의 무게다. 시적 표현 내용으로 볼 때 현실 상황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투시하였다. 문학 작품이란 생활 속으로 침투한 사연들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도구이다. 자식 된 입장에서 모진 고생을 감내하고 이제는 지팡이 지지대 세워 걸으며 늙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유감없이 시화를 발휘한 작품으로 애틋한 한 편의 사모곡이다.

『평화의 노래』는 이 작품의 주지가 되는 시적 무대공간은 아픔을 안고 있는 한반도에 분단의 역사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국가는 한반도와 중국뿐이다. 시제에 내포되었듯이 우리 민족이 애타게 부를 평화의 노래는 “혈육의 정에 목말라 애태우는 이산가족”들만이 아닌 “이념을 넘어 천륜으로 이어진 사랑”의 노래여야 한다. 이제는 이별의 아픔이 없는 한 가족으로 살고 싶다는 희망곡이다.

『사랑의 둥지』는 전편『첫사랑』의 시편처럼 모티프(Motif)로 시적 발상을 착상시킨 주지시(主知詩)이다. 시가 감정만으로 작용하지 않고 소재와 언어를 처리하는 지적 능력이 함께 작용한다. 이 작품 속 “목소리, 허기진 배, 허름한 집, 사람의 인적, 조각난 차양, 하얀 고무신” 등으로 의인화한 특징을 보인다. 이처럼 인간이 의외의 것을 인간에다 비유하고 인간의 사고와 생활을 이것들에 적용함으로써 어떤 실감을 현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신인 등단 문학상 심사 위원들은 이번에 등단하는 양승연 수상자가 우리 문예마을 문단에 힘이 되어줄 원군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다음 신인상에는 더욱 참신하고 전망이 밝은 신인이 발굴되기를 기대해 본다. 수상을 거듭 축하드리고 이 수상을 계기로 더한층 견고한 서정과 인식으로 한국 문단의 크나큰 진경을 보여주시기를 바라면서 시인으로서 힘찬 정진을 재삼 당부를 드리고 건필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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