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세종시장

최민호 세종시장(사진제공=세종시)
최민호 세종시장(사진제공=세종시)

 

미래학자들이 30년 후의 사회를 예측할 때 조사하는 것은 바로 중고등학교 청소년들의 교실입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어떤 ‘꿈과 이상을 갖는가’가 미래사회의 모습이고, 이들이 꾸는 꿈은 머지않아 우리의 현실이 됩니다. 

이들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아니 무슨 꿈을 꾸게 할 것인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린이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며 담임 선생님들이 숱하게 건네시던 질문. 

‘장래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무엇이 “되고” 싶은가? 

언제부터인가 나는 청소년들에게 꿈을 물을 때 ‘무엇이 “되고” 싶나’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나’라고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되고 싶은 꿈’은 지위에 대한 꿈같이 들리고, ‘하고 싶은 꿈’은 업적에 대한 꿈같이 들립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안일하게 자리를 누릴 생각이 아니라면, 무엇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하기”위한 수단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꿈의 최종적 이상(理想)은 "무엇을 하는 것".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부강하게 만들고 싶다’라는 꿈과 ‘대통령이 되고 싶다’라는 꿈은 목표의 열정이 다르고, ‘타임머신을 만들고 싶다’와 ‘과학자가 되겠다’는 것에는 꿈의 박력이 다릅니다. 

노벨상은 무엇이 ‘된’ 사람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무엇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입니다.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와 주인의 아들들이 함께 형제의 테이블에 앉게 되리라는 꿈이 있습니다.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골짜기마다 돋워지며 모든 언덕과 산들이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는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며 뉴햄프셔의 광활한 언덕 위에서 자유의 종이 울리게 합시다. 

뉴욕의 웅장한 산맥 가운데 자유의 종이 울리게 합시다...”

(‘I have a dream’ 중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킹 목사의 저 유명한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 속에는 무엇이 되겠다는 꿈은 한 구절도 없었습니다. 

내가 무엇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꿈. 

무엇이 되는 것보다 더 깊은 생각이 요구되는 꿈. 

무엇이 되는 것보다 더 열정적인 꿈. 그것은 ‘무엇을 이루는 꿈’입니다. 

나 스스로에게, 또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될 것인가를 묻지 말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봅시다. 그들에게 사명감을 느끼게 해봅시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봅시다. 

노벨상과 강대국은 그 고민의 끝에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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