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표 수필가
홍승표 수필가

“야! 너는 매일 점심시간에 어디로 사라졌다가 오는 거냐? 뭐 다른 짓하는 건 아니지?”

“무슨... 우리 집이 바로 옆이니 집에 가서 점심 먹고 오는 거지.”

“그래? 내일은 나하고 학교에서 같이 먹자.”

너른 고을(廣州)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저는 한 번도 도시락을 싸간 날이 없었습니다. 쪽문으로 담장을 지나면 바로 중, 고등학교였으니 점심을 집에서 해결했지요. 6남매나 되는 자식들 도시락을 싸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럴만한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집으로 들어가 있는 것 대충 꺼내먹고 먹을 게 마땅치 않으면 대충 쉬다가 학교로 돌아오곤 했지요. 가끔 친구들이 함께 먹자고 하면 못이기는 척 나눠먹었는데 다양한 반찬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결혼 후, 아들의 학생시절, 도시락은 아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의 하나였지요. 매일 반찬을 바꿔야하는 게 힘들었을 것입니다.

IMF 당시, 경기도청 구내식당 가격이 1,500원으로 저렴했지요. 삶이 어렵고 힘드니 도청 구내식당을 찾아와 점심을 해결하는 인근 시민들이 많았습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았지만 젊은 사람들도 모자를 눌러쓰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가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었지요. 그 후에도 도청 구내식당은 제법 많은 어르신들이 도청주변 수원화성을 산책하고 애용하는 점심장소로 사랑받았습니다. 그런데 도청에서 직영하던 구내식당을 외부전문 업체에서 위탁받아 운영하면서 외부인 이용이 어려워졌지요. 그나마 이제는 경기도청이 광교청사로 이전 후, 출입조차 자유롭지 않아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말았습니다.

역대 최악의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현상으로 실물경제가 어렵고 힘들어지면서 직장인들의 점심 문화도 크게 바뀌고 있지요. 점심 한 끼를 해결하는데 최소 만원 넘게 들어가는 게 큰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식집에서 ‘라면에 김밥’으로 간단하게 해결하는 것도 최소 7,000원 이상 들어갈 정도로 외식물가가 천청부지로 치솟았지요. 이렇다보니 편의점에서 꼬마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그렇게 먹고 힘내서 일할 수 있을까? 건강을 해치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지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의 건강과 열정이 우리 미래이기 때문이지요.

엊그제 함께 일했던 공직 후배들과 점심을 먹었는데 오랜만에 외식을 해본다며 좋아했습니다. 가격이 3,500원인 구내식당에서 밖에서 한 끼 먹는 비용으로 세끼를 해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과거 하루 500명 미만이던 이용자가 1,000명을 넘어선지 오래돼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전쟁(?)인데 그것조차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아들도 점심도시락을 싸들고 다니기 시작했지요.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나눠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도 했습니다. 다시 등장한 도시락이 그리 달갑지만 않은 건 무슨 까닥일까요? 이러다 삼삼오오 어울려 점심을 먹는 정겨운 모습들이 아련한 옛 추억으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지요.

도시락은 학부모들의 영원한 숙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른바 무상급식이 전격 시행되면서 도시락 고민은 일거에 해결됐지요. 무상급식은 국민들이 보편적 복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끔 컵라면이나 김밥이 생각날 때, 찾아 먹는 일은 행복한 일이지요.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아 김밥 한 줄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건, 눈물 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현실은 암울하고 세상 돌아가는 게 어둡기만 하지요. 밥한 끼 마음 놓고 사먹지 못하는 세상살이는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체 높으신 분들은 김밥 한 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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