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주 전 육군 대장

박찬주 육군 대장
박찬주 육군 대장

프랑스의 국부로 추앙 받는 '샤를 드골' 대통령의 이름은 파리의 주요광장이나 원자력추진 항공모함의 명칭 등 여러 곳에 남아있다. 1977년 제가 독일육사에 유학갈 당시 독일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 파리에 내린 공항의 이름이 샤를 드골 공항이었다. 그는 프랑스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처럼...

샤를 드골은 1890년 파리 북쪽 '릴' 시에서 태어나 섕시르 육사를 졸업하고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1940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프랑스 제4기갑사단장으로 독일의 전차군단에 맞섰으나 전격전을 구사하는 독일군은 개전 6주만에 全 프랑스를 석권하였다.

독일에 점령당한 프랑스에는 친(親)나치정권인 비시 정부가 들어섰고 드골은 영국으로 건너가 자유프랑스 망명정부를 이끌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루스벨트는 미-쏘-영 3국이 주도하는 전후질서를 구상하고 있었고 프랑스는 패전국의 지위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드골의 강력하고 저돌적인 외교적 노력으로 결국 프랑스는 전승국 지위를 갖게 되었다. 프랑스에게는 이것이 드골의 가장 큰 역사적 성과다.

드골은 미국과 쏘련이 세계를 주도하는 양상속에서 유럽민족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일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라인강을 건너가 독일군중 앞에서 유창한 독일어로 역사에 남는 연설을 하였다.

그 요지는 "당신들은 탁월한 민족이다" 였는데 독일군중들이 그 칭찬에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독,불 우호조약인 '엘리제 조약'을 체결하고 유럽연합공동체를 강화하였다.

드골은 자체적인 핵개발을 추진하였고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 갈등을 빚었는데 핵우산으로 프랑스를 보호하겠다는 미국의 특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질테니 이에 답변하라" 고 요구 했다.

그 역사적 질문은 "미국은 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는가?" 였다. 뉴욕이 초토화 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파리를 위협하는 쏘련에게 미국이 핵공격을 감행할 수 있느냐는 것..

미특사는 얼굴이 벌개진 채 답변을 못하였고 1960년 프랑스는 핵실험에 성공했다. 드골은 말한다. "어느 나라든지 다른 나라를 도와줄 수는 있어도  다른 나라와 운명을 함께해 주지는 않는다..."

지금 한반도에는 북한의 핵위협이 현실화 되었다. 미국은 핵우산정책을 구체화한 소위 확장 억제정책으로 한국을 보호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이 이런 공개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미국은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서 LA와 하와이를 포기할 수 있는가?"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빌미를 없애기 위해 당시 한반도에 배치된 수백 기의 전술핵무기를 괌으로 철수 시켰다. 이제 북핵 위협이 현실화된 이상 북핵폐기가 이루어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라도 전술핵무기를 재반입해야 한다는 게 홍준표 대구시장의 소신이다.

나는 홍 시장의 "무장평화", "전술핵 재배치" , "핵공유" 정책을 지지한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반대하는 데 무리할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선택도 우리의 여론과 의지에 따라 좌우되게 마련이다. 우리가 미리 알아서 긴다면 미국이 움직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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