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 시인
홍명희 시인

나무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홍명희

나는 나무의 가느다란 줄기 하나가 내미는 동그란 열매를 손가락으로 받아먹었다

열매는 구운 은행처럼 연한 연두색이었고 말랑말랑했다

혀 끝으로 열매를 굴리자 입안에서 노랗고 비린 피라미 맛이 났다

노란 알갱이에서 어린 피라미들이 깨어나기 시작했고 파닥거리며 입속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입안이 간지러워 라고 말하자 나무의 눈이 내 손을 잡아 그리고 눈을 감아 라고 말했고 나는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그네에서 막 내린 것처럼 잠시 흔들렸다

마음으로만 눈을 떠 그럼 날 수 있을 거야

나는 홀린 듯 심장 속에 깊이 숨겨 두었던 두 눈을 꺼내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집게처럼 눈꺼풀을 열었다

작고 낮은 웃음소리가 먼저 흘러나왔고 희미하게 나무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이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이 오고 있었다.

<작가노트>

눈을 뜬다는 것은 비로소 세상을 담는다는 것이다.

겨우내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세상을 향해 나오는 새싹의 여린 몸짓은 얼마나 두근거릴까.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에 속하지 못하고 세상과 더불어 숨 쉴 수 없었던 자에게 시가 손을 내밀었다.

그 작고 둥근 한 알 시의 씨앗이 한 사람의 마음을 열어 세상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게 했다.

시를 통해 마음이 열리는 첫 순간을 쓴 시다.

<홍명희 시인 약력>

첫시집 『나무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0년, 지혜출판사 )

2016년 심상신인문학상 등단, 시낭송가, 대덕구장애인복지관 시창작 &시낭송강사, 대전북부여성가족원 힐링톡톡 시창작 &시낭송강사, 대덕구 힐링톡톡 시창작 &시낭송 배달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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